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안 사건 (문단 편집) === 장제스 억류 === 1936년 12월 12일 장쉐량은 25세의 쑨밍쭈(손명구, 孫銘九) [[상교]][* (1908~2000) 이 사람도 참 우여곡절이 긴데, 후에 동북군 소속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포로가 된 이후 전향했다가, 일본이 항복하자 다시 국민당에 투항. 다시 공산당이 득세하자 공산측에 붙는다. 공산측에서는 기사회생의 전기가 된 시안 사건에서의 그의 공을 감안하여 처벌하지 않고 관리로 임용했다. 그 험악하던 중국 현대사의 폭풍 속에서도 천수를 누렸다.] 이하 13명의 [[군관]]을 불러 장제스 [[체포]]를 지시했다. 장쉐량은 절대 총을 사용하지 않을 것, 만약 장제스가 [[부상]]을 입는다면 너희 모두를 [[총살형]]에 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손명구 상교는 4개 [[트럭]]에 탄 120명의 정예병력을 대동하고 장제스가 머무르고 있던 서안성 화청지를 습격하여 격렬한 총격전을 벌였다.[* 실제로 화청지에 가면 장제스가 머무르고 있었던 건물에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과정에서 장제스의 호위병 대부분이 사살되었다. 새벽 4시 반에 막 일어나 잠옷 차림으로 체조를 하고 있던 장제스는 난데없는 총성에 호위병을 불러 정황을 알아보려 했으나 호위병이 돌아오기도 전에 다시 총성이 들려 다시 사람을 보냈고 더 많은 총성이 들리자 직감적으로 반란임을 알았다. 호위관 축배기와 시문표가 달려와 보고했다. >"반란군이 잇달아 침입하여 이미 제2교를 돌파했습니다. 우리의 응수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반란병은 우리 방위선이 견고함을 알고 현재 퇴각 중에 있습니다." 보고가 끝나자 모 구대장이 보낸 전령이 다시 보고했다. >전령: "반란군은 이미 제2분을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뒷산 보초의 전화에 따르면 그 쪽은 이상이 없으며 반란군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장제스: "모 구대장은 어디에 있나?" >전령: "구대장은 이미 제2교 부근의 축산에서 부대를 지휘하며 저항하고 있습니다. 위원장께서는 빨리 뒷산으로 피하십시오." >장제스: "반란군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전령: "가죽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전원 동북군의 장병입니다." 결국 장제스는 옷을 갈아입긴 커녕 틀니조차 챙기지 못하고 호위관 축배기, 시문표, 수행원 장효진을 따라 뒷산으로 달아났다. 비홍교를 지나 동쪽문에 이르렀는데 문이 잠겨있던지라 담장을 넘어 도망가야 했다. 담장은 3미터 높이로 크게 높진 않았으나 담장 너머에 도랑이 있었고 날이 어두워 넘어져 다치고 말았다. 통증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는 장제스를 위병들이 부축하여 화청지 [[온천]] 뒷편의 산으로 피신시켰다. 이 과정에서 장제스는 수없이 넘어지고 미끄러져 많이 다쳤고 고통이 너무 심해서 부하들이 없었으면 일어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할 지경이었다. 30분 정도 올라가 정상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장제스는 이미 포위된 상태였고 동행하던 위병들은 모두 총에 맞아 쓰러진 후였다. 장제스는 사방이 겹겹이 포위된 것을 보고 이 사태가 국부적인 반란이 아니라 동북군 전체의 반란임을 알고 도망치길 멈추고 되돌아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장제스는 산 중턱에서 넘어져 바위굴에 떨어졌고 극도로 지쳐 있던 장제스는 일어설 수도 없어 동굴에 몸을 숨기고 휴식하였다. 오전 9시가 되어서야 총성이 멎고 동북군 장병들이 산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바위굴 위에 다다른 동북군들이 장제스를 발견하고 사복 입은 자 "위원장이 아니겠는가? 총을 한방 쏘아볼까?"하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장제스가 외쳤다. >"나는 장 위원장이다. 무례는 용서치 않겠다. 나를 포로로 삼으려거든 차라리 당장 나를 사살하라. 조그만 모욕도 용서치 않겠다." 당연하지만 동북군은 그러지 않고 허공에 세발의 총을 쏘아 장제스를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에 쑨밍쭈가 직접 올라왔다. 장제스는 자신을 맞이한 쑨밍쭈 상교에게 "만약 날 [[전우]]라고 생각한다면 날 쏴 죽여라."라고 부탁했지만 쑨밍쭈는 "위원장님은 제 포로이기도 합니다."라면서 당연히 그 부탁을 듣지 않았다. 쑨밍쭈는 장제스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하산할 것을 간청했고 이에 장제스는 시안 시내까지 가기 위해 말 한 필을 청했지만 말이 없었던 고로 쑨밍쭈가 직접 장제스를 업고 산을 내려와 그를 차에 태웠다. 장제스는 화청지 내부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부하들의 시신을 목도하고 극도로 분노했고 자신을 맞이하는 [[군악대]]와 [[장교]]들에게 나에게 [[경례]]하지 말라며 [[분노]]를 토했다. 장제스는 다시 오전 10시 경에 서북수정공사가 설치된 신성대루의 양후청의 본거지로 이송되어 수감되었다. 장제스는 장쉐량을 부를 것을 지시했고 30분 후에 장쉐량이 나타났다. 장쉐량이 정중히 경례하자 장제스가 물었다. >장제스: "오늘 일을 자네는 사전에 알고 있었나?" >장쉐량:" 몰랐습니다." >장제스: "몰랐다면 즉시 날 난징이나 뤄양으로 돌려보내야 마땅하다. 그렇게 하면 사태는 수습할 수 있다." >장쉐량: "사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만 위원장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장제스: "네가 날 위원장이라고 부르는가? 상관이라고 인정한다면 명령에 따라 뤄양으로 돌려보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는 반역자다. 나를 사살하라. 그 밖에는 너에게 할말이 없다." >장쉐량: "만일 위원장이 내 의견을 들어 주신다면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장제스: "너는 도대체 나의 부하인가 적인가? 부하라면 명령에 복종하여 나를 돌려보내라. 적이라면 나를 죽여라. 둘중의 하나다. 그 밖에는 나는 아무 말도 듣지 않겠다." 장쉐량은 장제스에게 국공합작의 대의에 대해 설득하려 했지 격심한 언쟁이 이어질 뿐 진전이 없었고 극도로 분노한 장제스가 선포했다. >"이 세상이 끝없이 넓다 할 망정 네 몸을 의탁할 곳이 있을 줄 아느냐? 너는 살아서는 발 디딜 땅조차 없을 것이고 죽어서는 뼈를 묻을 곳 조차 없을 것이다. 네가 용감한 사나이라면 어서 나를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네 죄를 뉘우치고 즉시 날 석방해라." 장쉐량이 재차 설득을 시도하자 그는 꺼지라고 욕을 퍼부으며 장쉐량을 내쫓았다. 장제스는 좁고 더러운 방에 수감되었는데 그는 장쉐량이 제공한 음식과 담요를 모두 거부했고 좋은 숙소로 이동시켜주겠다는 제의를 장쉐량이 직접 두 번이나 감방 문까지 와서 권했음에도 단호하게 물리쳤다. 장제스는 날 풀어주지 않으면 이곳에서 죽겠다는 의지를 완강하게 드러냈고 장제스를 체포했던 쑨밍쭈 상교가 직접 방에 들어가서 90분이나 설득했음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쑨밍쭈는 장제스에게 자신의 권총을 주고 죽이고 싶으면 죽이라고까지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장제스의 태도에 장쉐량은 눈물까지 보였다. 만남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한편 피를 보고 흥분한 양후청의 [[병사]]들은 장제스의 호위병들을 대부분 죽이고 장제스의 조카인 헌병대 장교 [[장샤오셴]]까지 죽였다. 그리고 시안 시내 안의 장제스의 [[부하]]들을 체포한단 구실로 대대적인 약탈을 벌였다. 시안 시내의 은행장이 총에 맞아 죽고 150만 [[위안]] 어치의 [[밀가루]]를 열차에서 강탈하기도 했다. 란저우 등지에서도 부화뇌동하여 반란이 일어났다. 이들의 난동을 보다 못한 일부 동북군 장교들이 제지에 나서자 이들은 동북군 장교들까지 살해하고 그간 대민마찰을 단속해 온 헌병대 사령부를 습격해 헌병들을 닥치는대로 죽이며 분풀이를 했다. 이때 샤오위안충도 살해당했으며 [[천청]], [[웨이리황]], [[주사오량]], 장작빈, 장백리 등 중앙의 고급장교와 고관들이 체포되어 시안 영빈관에 억류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